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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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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서지 말고 굳게서라
박종성 2016.6.21 조회 618

 

 

설교 일부 발췌

 

 

                 물러서지 말고 굳게 서라 (6:10-13)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영적 전쟁의 한 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렸습니다. 어떻게 한주일 동안 영적인 싸움을 잘 하셨습니까? 승리하셨습니까? 아니면 많이 무너지셨습니까? 모두가 다 느끼셨겠지만 영적 전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더 많이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싸움을 인지하고 나름 노력을 하셨다면 잘 하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싸움이 대상이 되는 사단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길 원합니다. 사단은 어떤 존재인가? 어떤 전략과 전술로 우리를 유혹하는지 알게 된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큰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사단의 궤계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단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마귀의 간계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간계라는 뜻은 메소도이아라는 단어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간계라는 단어는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좀 더 부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술책, 사기, 속임, 기만, 계략, 교활, 유혹이라는 뜻입니다. 사단은 성도들을 넘어뜨릴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방법이든 다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예수님과의 영적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사람들을 향한 싸움을 아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교묘하게, 더 은밀하게,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싸움을 걸어옵니다. 그렇다면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간계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첫째 사단은 말씀을 왜곡하여 하나님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고후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사단의 궤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장면입니다. 사단은 매우 치밀하게 언약의 당사자인 아담이 아니라 하와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기 때문에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여기에서 바로 사단의 교묘함이 잘 나타납니다. 사단은 말씀을 왜곡했습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하와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품게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도록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살게 하는 말씀이고, 내 인생을 지켜주는 등불이요, 길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의 마음에 은혜의 말씀을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족쇄로 느끼게 만듭니다. 왜 굳이 이것을 지켜야 돼, 남들은 다 자유롭게 살아가는데 나만 왜 힘들게 살아야 돼?, 한 주 쉬어도 되잖아, 이번 한번만 눈 감으면 많은 것이 생기는데....

이렇게 나를 살리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다면 사단이 이미 우리의 마음과 귀에 속삭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납니다. 주시려면 다 주시지 왜 선악과는 먹지 못하게 하시지? 자유를 주시려면 다 주시지 왜 일부는 막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잘 사는 데 왜 나에게는 이렇게 보잘 것 없는 것만 주시는 거야?, 다른 사람은 다 일이 잘 풀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도록 하실까?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나에게는 불공평 하신 것 같아?

  

하나님을 향한 이런 마음과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면 이미 사단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과 생각을 품게 되면 결국 사단의 유혹이 이미 반은 넘어 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들면 결국 더 이상 하나님의 통제 속에서 살지 않을 거야? 하나님도 나에게 마음대로 하시니 나도 마음대로 살거야 라고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려 버립니다.

  

속지 마십시오. 사단은 나에게 자유를 주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살 자유와 권리가 있는 것처럼 부측여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려 놓으려고 합니다.

  

둘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 놓습니다. (분열)

  

사단이 노리는 두 번째는 바로 사랑의 관계를 증오의 관계, 용서의 관계를 정죄의 관계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만 깨어진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인간관계도 깨어졌습니다.

범죄 한 후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왜 말씀을 어기고, 욕심의 유혹을 버리지 못했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 책임을 전가 시켰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항상 관계라는 통로를 이용합니다. 사단은 직접 우리에게 유혹하기도 하지만 사람들 속에 역사해서 관계를 깨뜨립니다.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혈과 육에 대한 것이라면 혈과 육으로 상대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단은 혈과 육이 없는 영적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질 수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 찾아온 관계의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는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싸움이 단순히 나를 괴롭히는 어떤 사람과의 어려움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사단에 의해서 그 사람이 이용되고 있고, 그 사람 또한 사단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그 해결책도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과 관계의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이 없어져야 해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라도 편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나를 괴롭히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적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는 악의 실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대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관계의 어려움이 생겼다면 우리는 먼저 엎드려야 합니다. 관계로 인해 나의 마음이 황무해 지는 것을 막아야 하고, 사람이 아니라 사단의 역사를 막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사람속에서 역사하여 관계를 깨뜨리는 악한 영의 실체를 벗겨내고, 그것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문제의 관계속에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나와 상대방이 아니라 주님이 개입하실 때 우리는 비로소 문제를 풀어 갈수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더 걸릴 수 있고, 마음의 힘듬도 오랫동안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셋째 사단은 약점을 공격합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만 공격한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모든 사람들은 이 유혹에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사단은 예수님에게도 다가와 유혹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단의 무엇으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까? 그 첫 번째 유혹이 바로 이것입니다.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아니 예수님께 무엇인가 거창한 유혹을 할 것 같은데 고작 먹을 것으로 유혹을 하다니 사단이 예수님을 너무 앝잡아 본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영적으로 가장 충만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육신적으로는 배고픔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풍성하다고 해서 육의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의 약점이 바로 배고픈 육신에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의 교묘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약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점을 사단은 너무 치밀하게 공격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대해서는 별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며 나름 돈에 자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관계에는 집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관계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명예일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다른 사람이 다 알아주는, 높여주는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혈기일 수 있습니다. 앞 뒤 재지 않고 화부터 내는 사람,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 바로 이 사람은 그 마음을 자극해서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혈기를 부리도록 부축입니다. 말 한마디에 때문에 분노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 하나에 상을 뒤 엎습니다. 그 사람의 약점은 바로 그의 감정인 것입니다.

어떤 이는 다른 어떤 고난도 이겨내고, 힘듬도 믿음으로 이겨내는데, 다윗처럼 평안할 때 의외의 성적인 부분에서 약점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울처럼 비교의식에서 나오는 콤플렉스가 약점인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넷째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사단은 통치자, 권세들, 이 더움의 세상 주관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정치와 경제와 군사와 문화와 거짓 종교의 배후에서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단은 이 더움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에 어둠과 혼란함을 불어 넣어서 혼미한 마음을 갖게 하고 삐뚫어진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단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온갖 미신과 잘못된 생각으로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빛을 가리고 거짓은 어둠이 이 세상에 짖게 드리워진 배후에 사단의 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하늘에 있는 악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단에 의해 조정되어지는 악한 영향력들을 의미합니다. 사단은 악한 힘을 악한 사람들에게 제공함으로 악이 세상에 더 커지도록 유도합니다. 자기 테두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돈과 권력과 세상적 성공을 주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사용합니다.

사단은 이렇게 자신의 정체를 은밀히 감추고 세상 속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이 영적인 싸움을 12절에 씨름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씨름은 샅바를 붙잡고 하는 신사적인 스포츠 씨름이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맨몸으로 하는 레스링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목숨을 건 사투였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상대방을 절대로 사정을 바 주지 않습니다. 아니 조금한 약점을 보이면 그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그리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아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이 싸움에 대해서 대적하라고 도전합니다. 여기서 대적이란 적의 공격에 맞서 진지를 지키며 절대 항복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군사용어입니다. 대적은 굳세게 서서 버티는 것, 곧 사탄의 거짓말이 강풍처럼 불어 닥칠 때나 유혹이 홍수처럼 밀려들 때 그의 비난이 거머리처럼 따라 붙어 은혜를 빼앗아 가려고 할 때 상수리나무처럼 홀연히 버티는 것을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그 안에서 성장하며 믿음으로 굳건해져야 합니다.

  

결 론

  

우리의 싸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입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사단과의 싸움은 더 은밀하고 교묘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대적 마귀에게 여러분의 마음을 내어 주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을 공간을 남겨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마음과 생각을 지켜 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대적은 2인칭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영적전쟁에서 싸워 승리해야 한다는 도전과 함께 이 싸움은 혼자의 싸움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싸움이라고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서로 기도해 주고, 자주 격려하고 서로 묻고, 곁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아야 승리할 수 있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어깨와 어깨 방패와 방해를 서로 맞대어 방어력을 증대시켰던 로마 군인처럼 함께 싸우고 버텨야 하는 싸움입니다. 함께 견디고, 함께 맞서 싸워서 반드시 승리합시다. 이 싸움은 주님의 대장 되셔서 우리를 진두지휘하시는 승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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